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1~15장을 읽으며 정리한 핵심 개념과 구조를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한 글이다. 반복되는 논증은 줄이고, 이후 러셀·프레게·비트겐슈타인·형식 존재론·OWL로 이어질 수 있는 개념적 뼈대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전체 관점
《범주론》은 단순히 열 가지 범주를 외우는 책이 아니다.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어떤 것이 무엇인가?
- 그것은 개별자인가, 보편적인 종류인가?
- 그것은 다른 것에 대해 서술되는가?
- 다른 것 안에 의존하여 존재하는가?
- 그것은 실체인가, 질인가, 양인가, 관계인가?
- 서로 반대된다고 할 때 어떤 방식으로 대립하는가?
-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먼저라고 할 때, 어떤 의미에서 먼저인가?
즉 《범주론》은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 방식과,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구별하려는 작업이다.
1장 — 이름, 뜻, 파생
아리스토텔레스는 먼저 같은 이름을 쓴다고 해서 같은 뜻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구분한다.
한 이름 다른 뜻
이름은 같지만, 그 이름에 대응하는 규정(logos)이 다르다.
예를 들어 실제 인간과 그림 속 인간을 모두 ‘동물’이라고 부를 수 있어도, 둘에게 적용되는 ‘동물’의 규정은 같지 않다.
한 이름 한 뜻
이름도 같고 그 이름에 대응하는 규정도 같다.
예:
- 인간은 동물이다.
- 소는 동물이다.
여기서 ‘동물’은 인간과 소 모두에게 같은 뜻으로 적용된다.
파생된 것
한 이름에서 형태가 달라져 다른 이름이 생기는 경우다.
예:
- 문법 → 문법학자
- 용감 → 용감한 사람
여기서 logos는 법률적 ‘규정’이 아니라, 어떤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설명에 가깝다.
2장 — 결합된 말, 결합되지 않은 말, 바탕
결합되지 않은 말
예:
- 인간
- 소
- 희다
- 달린다
이런 말은 그 자체로 참이나 거짓이 아니다.
결합된 말
예:
- 인간이 달린다.
- 철수는 희다.
이처럼 말이 결합되어 하나의 명제가 되면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다.
바탕(hypokeimenon)
바탕은 다른 것들이 그것에 대해 말해지거나, 그것 안에 의존하여 존재할 수 있는 기초다.
대표적인 예는 ‘이 특정한 인간’이다.
예를 들어 철수를 생각하면:
- 인간은 철수에 대해 말해진다.
- 흼은 철수 안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구별은 다음과 같다.
- 인간 → 철수가 무엇인가를 말함
- 흼 → 철수가 어떠한가를 말함
즉 WHAT과 HOW의 차이다.
말해짐과 안에 있음
‘바탕에 대해 말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그 바탕에 관해 말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보편적인 것이 그 바탕을 분류하는 방식으로 적용된다는 뜻이다.
예:
- 인간은 철수에 대해 말해진다.
- 철수는 인간이다.
반면 ‘바탕 안에 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안쪽에 들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바탕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뜻이다.
예:
- 철수의 특정한 흼
- 철수의 지식
- 철수의 상태
존재하는 것들의 2×2 구분
| 바탕에 대해 말해짐 | 바탕에 대해 말해지지 않음 | |
|---|---|---|
| 바탕 안에 있지 않음 | 인간 같은 보편적 실체 | 특정 인간 철수 |
| 바탕 안에 있음 | 지식 같은 보편적 속성 | 철수의 특정한 흼 같은 개별적 속성 |
이 표가 2장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3장 — 서술의 전달, 유와 차이성
어떤 것이 다른 것에 대해 서술되고, 그 위의 것이 다시 그것에 대해 서술된다면 상위의 것도 아래 대상에 적용된다.
예:
- 철수는 인간이다.
- 인간은 동물이다.
- 따라서 철수는 동물이다.
즉 서술 관계는 위에서 아래로 전달된다.
또 서로 위아래 관계가 없는 유(類)들은 서로 다른 차이성을 가진다.
예:
- 동물의 차이성: 두 발 달림, 날개 달림 등
- 학문의 차이성: 연구 대상이나 방법 등
차이성은 같은 유 안에서 종들을 구별하는 본질적 특징이다.
4장 — 열 가지 범주
결합되지 않은 표현들은 존재의 서로 다른 방식을 나타낸다.
- 실체 — 무엇인가
- 양 — 얼마만큼인가
- 질 — 어떠한가
- 관계 — 무엇과 어떤 관계인가
- 장소 — 어디에 있는가
- 시간 — 언제인가
- 자세 — 어떻게 놓여 있는가
- 소유 — 무엇을 갖추고 있는가
- 능동 — 무엇을 하는가
- 수동 — 무엇을 겪는가
이 표현들 자체는 아직 명제가 아니므로 참이나 거짓이 아니다.
5장 — 실체
제1실체
가장 본래적인 실체는 이 특정한 개별자다.
예:
- 이 특정한 인간
- 이 특정한 말
- 철수
제1실체는
- 다른 바탕에 대해 말해지지 않고
- 다른 바탕 안에 있지도 않는다.
오히려 다른 것들이 그것에 대해 말해지거나 그 안에 존재한다.
그래서 제1실체는 최종적인 바탕이다.
제2실체
제1실체가 속하는 종과 유(類)다.
예:
- 철수 → 제1실체
- 인간 → 종, 제2실체
- 동물 → 유, 제2실체
종은 유보다 제1실체에 더 가깝다.
“철수는 인간이다”가 “철수는 동물이다”보다 철수가 무엇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실체의 특징
- 모든 실체는 바탕 안에 있지 않는다.
- 제1실체는 ‘이것(tode ti)’을 직접 나타낸다.
- 실체에는 반대되는 것이 없다.
- 실체는 더/덜의 정도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 그러나 같은 실체가 시간에 따라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차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예:
같은 사람이 따뜻했다가 차가워질 수 있다.
즉 성질은 변하지만 실체는 동일성을 유지한다.
6장 — 양
양은 크게 끊어진 양과 이어진 양으로 나뉜다.
끊어진 양
- 수
- 말
이어진 양
- 선
- 면
- 물체
- 시간
- 장소
또 어떤 양은 그 부분들이 서로 위치를 가진다.
예:
- 선
- 면
- 물체
반면 수의 부분들은 공간적 위치를 가지지 않는다.
본래적 양과 간접적 양
어떤 것은 그 자체로 양이고, 어떤 것은 다른 양과의 관계 때문에 양적으로 표현된다.
예:
- 흼 자체는 질이지만, 흼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으면 ‘흼이 많다’고 말할 수 있다.
- 행위 자체는 양이 아니지만, 오랜 시간 지속되면 ‘긴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양의 특징
- 양에는 본래 반대되는 것이 없다.
- 양 자체는 더/덜을 허용하지 않는다.
- 양은 ‘같은 만큼이다 / 같은 만큼이 아니다’라고 비교할 수 있다.
7장 — 관계
관계에 속하는 것은 다른 무엇과의 관련 속에서만 자기 자신으로 말해진다.
예:
- 두 배 → 무엇의 두 배인가
- 더 큼 → 무엇보다 큰가
- 앎 → 무엇에 대한 앎인가
관계의 상호성
관계는 적절한 상대항을 잡으면 맞바뀐다.
예:
- 주인 ↔ 노예
- 두 배 ↔ 절반
- 더 큼 ↔ 더 작음
관계가 뒤집히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상대항을 잘못 잡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예:
- 날개 ↔ 새 → 부정확
- 날개 ↔ 날개를 가진 것 → 더 정확
관계를 안다는 것은 무엇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되는지를 함께 아는 것이다.
단순한 소속과 관계는 다르다
머리나 손은 다른 것에 속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손인지 몰라도 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무엇에 속한다고 해서 모두 관계 범주에 드는 것은 아니다.
8장 — 질
질은 어떤 것이 어떠한가를 나타낸다.
1. 습성과 상태
습성은 비교적 오래 지속되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예:
- 앎
- 덕
- 정의
- 절제
상태는 비교적 쉽게 변한다.
예:
- 건강
- 병
- 따뜻함
- 차가움
2. 능력과 무능력
무엇을 쉽게 할 수 있거나 어떤 영향을 잘 견디는 성향이다.
예:
- 달리기를 잘함
- 튼튼함
- 허약함
3. 겪는 성질과 겪이
예:
- 단맛
- 쓴맛
- 따뜻함
- 차가움
- 흼
- 검음
오래 지속되고 쉽게 변하지 않으면 성질로,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면 겪이로 본다.
4. 형태와 모양
예:
- 삼각형
- 사각형
- 원
질의 특징
- 질에는 반대성이 있을 수 있다.
- 많은 질은 더/덜을 허용한다.
- 그러나 삼각형이나 원처럼 정도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 질도 있다.
또 질과 그것을 가진 대상은 구별된다.
예:
- 용기 → 질
- 용감한 사람 → 그 질에 따라 어떠하다고 불리는 대상
9장 — 능동, 수동, 장소, 시간, 소유
능동
다른 것에 변화를 일으키는 쪽.
예:
- 따뜻하게 함
- 차갑게 함
- 자름
수동
그 변화를 겪는 쪽.
예:
- 따뜻하게 됨
- 차갑게 됨
- 잘림
능동과 수동은 반대성과 정도 차이를 가질 수 있다.
나머지 범주들은 비교적 간단히 다뤄진다.
- 장소 → 어디에
- 시간 → 언제
- 소유 → 신을 신고 있음, 무장해 있음 등
10장 — 대립의 네 종류
대립에는 네 종류가 있다.
1. 관계적 대립
예:
- 두 배 ↔ 절반
- 주인 ↔ 노예
서로를 상대항으로 삼아야 자기 자신으로 규정된다.
2. 반대되는 것으로서의 대립
예:
- 흼 ↔ 검음
- 따뜻함 ↔ 차가움
각자는 서로를 통해 정의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반대된다.
3. 결여와 소유
예:
- 시력 있음 ↔ 실명
결여는 단순한 없음이 아니다.
본래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할 때인데 그것이 없는 상태다.
따라서 돌이 시력이 없다고 해서 실명한 것은 아니다.
4. 긍정과 부정
예:
- 소크라테스는 아프다.
- 소크라테스는 아프지 않다.
긍정과 부정은 반드시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가 거짓이다.
중간이 있는 반대와 없는 반대
중간이 없는 반대:
- 홀수 ↔ 짝수
중간이 있는 반대:
- 흼 ↔ 검음
- 그 사이에 회색 등이 가능
결여와 소유는 이 둘 중 어느 구조와도 완전히 같지 않다.
변화 방향
일반적인 반대는 양방향 변화가 가능할 수 있다.
예:
- 따뜻함 ↔ 차가움
- 건강 ↔ 병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유에서 결여로는 변화할 수 있지만 결여에서 소유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고 본다.
11장 — 반대되는 것들
대부분의 경우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반대된다.
예:
- 건강 ↔ 병
- 정의 ↔ 부정
- 용기 ↔ 비겁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나쁜 두 극단이 서로 반대되고, 좋은 것은 그 중간에 있다.
예:
- 모자람 ↔ 중용 ↔ 지나침
반대되는 것들은 한쪽이 존재한다고 해서 다른 쪽도 반드시 존재할 필요는 없다.
또 반대는 보통 같은 분류 축 위에서 성립한다.
예:
- 건강 / 병 → 몸의 상태
- 흼 / 검음 → 색
- 정의 / 부정 → 성품
12장 — 먼저
‘먼저’라는 말은 다섯 가지 방식으로 쓰인다.
1. 시간에서 먼저
더 오래 존재한 것이 먼저다.
2. 있음의 잇따름에서 먼저
B가 있으면 A가 반드시 있지만, A가 있다고 B가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닐 때 A가 먼저다.
예:
- 둘이 있으면 하나는 반드시 있다.
- 하나가 있다고 둘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하나가 둘보다 먼저다.
3. 순서에서 먼저
예:
- 자모가 음절보다 먼저
- 머리말이 본론보다 먼저
4. 가치나 지위에서 먼저
더 훌륭하거나 더 존경받는 것을 먼저라고 부르는 용법이다.
5. 원인으로서 먼저
어떤 것이 다른 것의 있음이나 참됨의 원인일 때, 원인이 되는 것이 먼저다.
따라서 ‘먼저’라고 할 때는 항상 어떤 의미에서 먼저인지 물어야 한다.
13장 — 같이
가장 본래적인 의미에서 ‘같이’는 시간적으로 동시에 있는 것이다.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먼저거나 나중이지 않다.
또 존재 관계가 양방향으로 성립하면서 어느 것도 다른 것의 원인이 아닐 때도 같이 있다고 한다.
예:
- 두 배 ↔ 절반
또 같은 유 아래에서 같은 단계로 맞구분되는 종들도 같이 있다고 한다.
예:
- 날짐승
- 들짐승
- 물짐승
다만 유와 종은 같이 있지 않다.
종이 있으면 유는 반드시 있지만, 유가 있다고 특정한 종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유가 종보다 먼저다.
14장 — 변화
변화에는 여섯 종류가 있다.
- 생성
- 소멸
- 팽창
- 수축
- 질의 변화
- 장소의 변화
전체적으로 변화는 정지와 대립한다.
또 개별 변화들끼리도 반대될 수 있다.
예:
- 생성 ↔ 소멸
- 팽창 ↔ 수축
- 위로 이동 ↔ 아래로 이동
중요한 것은 ‘변했다’고 뭉뚱그리지 않고 무엇이 변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15장 — 가지다
‘가지다’ 역시 하나의 뜻만 갖지 않는다.
예:
- 앎을 가진다.
- 덕을 가진다.
- 일정한 키나 크기를 가진다.
- 무엇을 몸에 갖추거나 착용한다.
즉 ‘가지다’라는 일상어도 여러 존재 관계를 표현한다.
《범주론》 전체 핵심
《범주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분류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표현을 보고 곧바로 같은 종류라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다.
계속 물어야 한다.
- 같은 이름인가?
- 같은 규정(logos)을 가지는가?
- 이것은 무엇인가?
- 이것은 어떠한가?
- 개별자인가, 보편적인 종류인가?
- 다른 것에 대해 서술되는가?
- 다른 것 안에 의존하여 존재하는가?
- 다른 것과 관계 속에서만 정의되는가?
- 반대라고 할 때 어떤 방식의 대립인가?
- 먼저라고 할 때 어떤 의미의 먼저인가?
가장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 제1실체 → 이 특정한 개별자
- 제2실체 → 종과 유(類)
- 질 → 어떠함
- 양 → 얼마만큼
- 관계 → 다른 것과의 얽힘
- 장소 → 어디
- 시간 → 언제
- 자세 → 어떻게 놓여 있음
- 소유 → 무엇을 갖춤
- 능동 → 무엇을 함
- 수동 → 무엇을 겪음
그리고 이 존재 방식들 사이의 대립, 선후, 동시, 변화, 가짐을 추가로 분석한다.
결국 《범주론》은 세계를 단순한 ‘것들의 목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무엇이며 다른 것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존재하는지를 구별하는 기본 틀을 제시한다.
이후 공부와의 연결
《범주론》의 개념은 이후 다음과 연결해 볼 수 있다.
- 제1실체 → individual
- 제2실체 → class / type
- 질 → property / quality
- 관계 → relation
- 바탕 안에 있음 → dependence
- 종과 유 → subclass hierarchy
- 서술의 전달 → 상위 분류의 속성이 하위 개체에 적용되는 구조
다만 이런 대응은 이해를 위한 비유이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와 현대 OWL·형식 존재론이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후 프레게, 러셀, 후설, 잉가르텐, Barry Smith, BFO, Description Logic, OWL로 넘어가면 《범주론》에서 시작된 질문들이 다른 방식으로 다시 나타난다.
